고등학생 시절, 어느 친구의 책상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무처럼만 살자.’
‘제 홀로 뿌리 내리고, 제 홀로 가지를 뻗고, 제 홀로 잎 새를 매달고, 제 홀로 잎 새를 떨구는 나무처럼... 돌보는 이 없어도 앙앙 대지 않고, 알아줄 자 없다고 악 쓰거나 티내지 않은 채 안으로 속살을 키워내는 나무처럼. -루쉰-’
나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많은 배울 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가자미식해가 다섯 번째로 찾아간 곳은 나무를 닮아가고픈 일러스트 작가 커플 ‘키 큰 나무’의 작업실입니다.
‘키 큰 나무’의 작업실은 부천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부천 시청 근처에 있는 한 오피스텔 13층에 위치한 작업실은 복층 공간으로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커다란 창이 있어 확 트이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먼저 ‘키 큰 나무’에 대해 소개할게요.
‘키 큰 나무’는 박만희(남,28세)씨와 마리아(여,27세)씨로 이루어진 팀으로, ‘키 큰 나무’라는 이름은 박만희씨가 인디언에 관한 책을 읽으며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인디언 족장 이름이 ‘땅에 뿌리박고 하늘 높이 두 팔 벌리고 서있는 키 큰 나무’였는데, ‘키 큰 나무’라는 말의 느낌과 뜻이 좋아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두 분 다 키가 작기 때문에 키가 크고 싶어서 짓게 되었다고 해요.
“저희가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한지 1년 좀 안되었어요. 작년 캐릭터 페어 때 참가하게 되면서 이름도 짓고, 사이트도 만들고, 그것을 계기로 작가 활동이 시작 되었죠. 그 전에 정글 아카데미 학원에서 저희가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눈이 맞았죠. 하하.”
마리아씨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고, 박만희씨는 영상디자인을 전공하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은행원 일을 하게 되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 결국엔 좋아하는 쪽으로 오게 되었다고 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께서는 번듯한 회사 생활하면서 월급 받는 게 제일 좋다고 말씀하시지만 특별히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어요. 주변에서도 별다른 말 없었고요. 경제적으로는 항상 걱정되고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즐겁고 알차게 살게 된 것 같아요. 회사 생활할 때는 그 일만 딱딱 끝내고,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되니까 멍해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뭐하나 해도 제가 직접 찾아서 하게 되고, ‘내 일이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자꾸 욕심이 생겨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프리마켓도 참가하게 되면서 같은 일하는 분들도 만나게 되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바빠지는 것 같아요. 할 일도 많아지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요.”
“물론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생활은 많이 난감하죠. 요즘 경기도 안 좋아서 더 그렇고요. 사람이 살기 힘들면 예술, 문화 쪽은 뒷전으로 두게 되잖아요. 먹고 살기가 풍요로워야 그 쪽으로도 눈이 가고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타격이 크죠.”
지속되고 있는 경기 침체가 문화, 예술계 쪽에도 영향이 미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 같아요. 이럴 때 일수록 세상이 문화, 예술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 서로 힘을 얻고 치유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본격적으로 작업실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키 큰 나무’가 부천에 작업실을 갖게 된 계기는 한복그림으로 유명한 윤서희 선생님의 추천 때문이라고 해요.
“그 분이 여기에 사시는데, 살면서 보니까 이 동네에 그림 그리는 분들이 많대요. 그리고 서울에 비해 집값도 훨씬 싸고 살기도 좋다고 하셔서 직접 와봤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편의시설들이 근처에 다 있고, 공원도 많고, 또 축제, 행사도 자주 하고요.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오피스텔이 작업하기에 편해요.”
‘키 큰 나무’는 부천에 온 지 1년 정도 되었고, 이번에 방문한 작업실은 두 번 째 작업실로 이사 온지 2주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오피스텔 공간의 2층은 박만희씨가 사는 곳이고, 1층은 작업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키 큰 나무’의 책상 앞 벽면에는
좋아하는 작품들이나 사진, 직접 스케치한 그림들이 붙어있어 흥미로웠고, 작업한 단행본 책들, 책갈피, 다이어리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 있었던 공간은 10평도 안되었어요. 만희씨가 사는 공간이기도 해서 큰 작업하기가 어려웠죠. 근데 여기서는 가능해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리아씨의 말에 만희씨는 “이제 숨통이 트였다”며 전에 있었던 작업실의 답답함을 토로하였습니다.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는 점에 대한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의뢰 들어오는 일은 거의 급하게 작업해야하는 거라 서로 도우며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추구하는 색깔이 달라서 한 쪽이 잘못 가는 경우 바로 잡아줄 수 있더라고요.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싸움으로써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게 되고요. 그리고 혼자 작업한다는 게 굉장히 외롭거든요. 저희 같은 경우는 그런 게 없어 좋아요.”
‘키 큰 나무’는 작업실에서 세끼 식사를 거의 직접 해먹는데, 주로 해먹는 요리는 쉽게 만들 수 있는 라면, 계란프라이, 계란말이, 두부전, 순두부찌개, 미역국이라고 합니다.
그 날도 필자를 포함한 일상예술창작센터 활동가들을 위해 ‘키 큰 나무’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는데, 맛난 비빔밥과 두부전을 선보였어요.
일상예술창작센터에서 하고 있는 새끼 강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재미있게 드로잉 수업을 하려고 해요. 요즘 2기 분들 수업하는데 그림 그리고 싶어서 오기도 하지만 이런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오는 분들이 많아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요. 수강생은 다양한 직종과 지역 분들이 오는데, 얘기해보면 좋아하는 게 비슷비슷 해요. 영화, 책, 음악, 여행 같은 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고, 저희가 더 많이 배우게 되요. 그리고 그림 안 그리셨던 분들 그림이 더 신선하고 알차요. 저희는 익숙한 대로 그리는데, 그 분들은 항상 신기하고 신선해요.”
마지막으로 키 큰 나무의 계획과 목표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 작업실에서 새끼에서 강좌 하듯이 해보려고 해요. 간단하게 4-5명 정도만 받아서 취미반으로 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단기 목표로는 젊었을 때는 홍대로 가서 사람들 많이 만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을 갖는 거예요. 전시 공간 겸 작업실로 할 수 있는 공간. 마지막 목표는 다달이 그림 그려서 먹고 살만큼 고정수입을 받을 수 있다면 여기보다 조금 더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농사도 지어 먹을 것을 자급자족 하면서 살고 싶어요. 다들 그렇게 많이 생각하죠. 그게 꿈이에요. 자유롭게 산다는 게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항상 경제적으로 얽매있어서.”
“만화 원피스 보셨어요? 너무 좋아해서 보는데 주인공인 루피가 만날 해적왕이 되겠다고 그러거든요. 그렇게 되고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식으로 누군가 물어봐요. 그건 중요하지 않고 가장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해적왕 아니냐고 하는 부분이 나와요. 자유롭게 사는 게 되게 힘들잖아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키 큰 나무.’ 필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도 ‘키 큰 나무’처럼 자유를 꿈꿀 것입니다. 자유로워지려면 앞서 말했던 루쉰의 나무 이야기처럼 먼저 스스로 속살을 키워내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키 큰 나무’는 홀로가 아닌 두 그루로 이루어져있기에 더 큰 힘으로 잘 성장해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인터뷰하러간 활동가들을 배려하고 대접해주신 ‘키 큰 나무’께 감사드리며 이번 가자미식해 마실도 마칩니다.
홈페이지: www.talltree.kr
인터뷰 한유진, 라유경
편 집 한유진
발 행 일상예술창작센터


